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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경원` 상속자산 대이동…日 고령화가 남길 양극화 유산

    65세이상 금융자산 900조엔…부동산 합치면 1000조엔 달해
    시골살던 노인들 사망하며 도쿄 등 대도시 자녀에 상속…지방→도시 급격한 자산이전
    가장 낙후된 시코쿠 지방선, 20년간 자산 18% 이탈 예고

    기사입력 2017-08-09 17:31:36 | 최종수정 2017-08-11 17:31:08
    日 상속 리스크, 지역격차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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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 출신인 나가 스구루 씨(64)는 지난겨울 사망한 부친의 재산 상속을 최근 마무리했다. 부친의 금융자산과 고향집 매각대금 등은 현 거주지(도쿄 시부야구) 인근의 미즈호은행으로 모두 옮겨왔다. 나가 씨는 "생활 근거지가 도쿄여서 고향 은행에 돈을 묻어둘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나가 씨 본인 역시 상속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 전체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도 한몫했다. 나가 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1000조엔(약 1경원) 상속자산의 대이동이 본격화하면서 일본의 지역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에서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자산은 900조엔에 달한다. 여기에 부동산자산 등을 합하면 '1000조엔'이 달할 것이란 게 일반적인 추산이다. 1000조엔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규모인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의 6배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 고령화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이처럼 상속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사망자가 매년 늘고 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3년 100만명을 넘어선 연간 사망자 수는 지난해엔 130만7765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연간 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2009년 한 해뿐이다. 현재 추세라면 2030년께엔 연간 사망자 수가 1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고령자 사망이 늘수록 커지는 상속자산 규모가 대도시와 지방 간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망자는 일본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는 데 비해 이를 물려받는 자녀 세대는 도쿄 등 제한된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이 이유로 분석된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의 상속에 따른 지역별 자산 증감률 전망에 따르면 자산이 늘어나는 곳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 지역에 머물렀다.

    특히 향후 20년 안에 상속을 통해 지역 내 금융자산이 5% 이상 증가하는 지자체는 일본 47개 광역 지자체(도도부현)에서 4곳에 불과했다. 도쿄와 도쿄와 접하고 있는 3개 현뿐이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현재도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 일본 전체 금융자산의 40%가 집중돼 있지만 상속을 통해 쏠림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으로 주변에 대도시가 없는 지역일수록 자산의 유출 속도는 가팔랐다. 최악으로 평가된 시코쿠 지역은 감소폭이 17.8%에 달했다. 시코쿠 지역 전체 금융자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9조엔가량이 상속 과정에서 지역 외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일본 동북부 지방을 뜻하는 도호쿠 지방도 상속 과정에서 지역 전체 자산의 14.6%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자산의 감소는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방 은행의 건전성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어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미 영향은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으로 제1금융권 예금자산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가량 증가했으나 도호쿠 지방 등에서는 예금자산 규모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인구 쏠림 현상도 가속화하면서 상속에 따른 양극화를 격화시키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전체 인구는 지난해에도 30만명 이상 줄며 8년째 감소했다. 이에 비해 도쿄 인구는 작년 한 해 동안 약 7만7000명이나 늘었다. 도쿄가 인구와 자금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

    아베 신조 총리는 2015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방창생상'이란 장관직까지 만들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상속이 이처럼 도쿄를 제외한 지방 경제의 체력을 좀먹고 있지만 중앙정부 입장에선 새로운 금맥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고독사를 비롯해 소자녀화 등으로 인해 상속을 받을 사람이 없는 자산도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상속인이 없을 경우 일정 기간 법원이 정한 '상속재산관리인'의 관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국고에 귀속된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5년의 경우 상속포기로 인한 국고 귀속금액은 금융자산만 420억엔으로 10년 전에 비해 2.5배 이상 늘었다. 부동산 역시 사망자 급증에 따른 소유주 불명 규모가 빠르게 늘면서 일본 정부에서 처리 방안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일본 법무성이 올해 10개 시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조사에서 지방의 경우 전체 부동산의 27%에 소유주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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