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현장

  • [인터뷰] "기업 경영노하우 기부에 접목해야"

    정부·모금단체·기부자간 낮은 신뢰 개선이 급선무
    기부 관련 세제혜택 늘리면 통 큰 기부 늘어

    기사입력 2017-11-11 00:12:43 | 최종수정 2017-11-11 00:14:49
     "기부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기업의 참여가 필수다. 기부의 투명성을 높여야 더 많은 기업들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서 기부의 계절이 찾아왔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어금니 아빠' 등 최근 기부를 악용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모금 단체들은 걱정이 많다. 기업들의 기부 활동이 위축될 것 같아서다.

     아시아의 기부 문화를 연구하는 루스 샤피로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명하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업들이 기부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될지 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기부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3년 홍콩에 설립된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15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기부의 투명성과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등 기부 문화 선진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올바른 기부를 통해서 아시아 지역의 교육, 건강, 환경, 빈곤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특히 샤피로 대표는 아시아 지역의 주요 기업 경영인들의 모임인 ABC(Asia Business Council) 창립자로써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사무총장을 지냈다. 기업 사정에 밝은 '기업통(通)'이다. 한국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 ABC 회원이다.

     샤피로 대표는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에 맞춰 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중국은 정부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을 선언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빈곤층에 적극 기부하고, 인도는 정부가 화장실 문화 개선에 팔을 걷어 붙이자 인도 기업들이 너도나도 화장실 확충에 기부금을 내놓는 식이다. 따라서 기업의 선의(善意)가 왜곡되지 않도록 당당하게 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샤피로 대표는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정부와 모금단체, 기부자간 신뢰 적자(trust deficit)가 큰 나라"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 이면에 간혹 정경유착 등이 있었던 만큼 기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이다. 샤피로 대표는 "모금 단체들은 회계, 예산편성, 전략수립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업들이 단순히 기부금만 낼 것이 아니라 단체의 이사회 등에 적극 참여해 경영 노하우도 함께 나누면 신뢰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모금단체들에 애정 어린 쓴소리도 했다. 샤피로 대표는 "스스로를 비정부단체(NGO)·비영리단체(NPO)라고 말하는 모금단체들 중에는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비(Non·非)'가 빠진 '정부단체(GO)'나 '영리단체(PO)'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단체가 정치색을 띄면 기업들은 기부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기부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순수하게 사회의 약자를 도우며 건강·환경·교육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소셜 딜리버리 오가니제이션(Social Delivery Organization)'도 필요하다"고 했다.

     샤피로 대표는 '선의 지표(Doing Good Index)'를 개발하고 있다. 아시아 15개국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를 내년 1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선의 지표는 제도·세금혜택·자금조달·기부 생태계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됐으며 해당 국가가 기부하기에 얼마나 좋은 여건인지를 보여준다. 세계은행이 국가별로 기업 경영 환경을 따져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에서 착안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기부금의 세제 혜택이 가장 적다"며 "정부가 기부금 관련 세제를 잘 손질하면 기부를 장려하는 명확한 시그널을 줄 수 있어 기부금이 확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사진·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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