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현장

  • 일대일로 차이나머니 달콤한데
    빚의 덫 경고음 커지는 아세안

    말레이시아 동부해안철도 등 중단
    인니 고속철 사업, 공사 중단·재검토 `반복`
    미얀마 차우퓨 심해항 프로젝트 축소
    빌린 중국 돈 못 갚으면 인프라 `헌납`

    기사입력 2018-07-24 18:04:25 | 최종수정 2018-08-03 20:00:31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돈과 인프라가 급한 동남아 국가들이 재정지출이나 지급보증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중국의 제안을 덥석 받았다가 뒤늦게 '빚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사업들을 재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동남아 지역에서 일대일로 구상을 실현한다는 중국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정권이 교체된 말레이시아는 최근 중국 국영기업이 수주해 진행하던 동부해안철도(ECRL)건설 공사를 전격 중단했다. 이 사업은 말레이 반도 동부 툼팟에서 서부 해안에 있는 말레이시아 최대 항구 클랑까지 668㎞ 구간을 잇는 것이다. 중국이 총 사업비 550억 링깃(약 15조원)의 85%를 융자하는 조건이었다. 친중(親中)성향이던 나집 라작 전 총리는 수익성이 의심된다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강행했다.

     ECRL은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완공되면 중국은 윈난성 쿤밍에서 시작해 라오스와 태국을 넘어 전략적 요충지인 클랑으로 이어지는 육상교통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난 5월 총선 후 들어선 새 정권은 사업 비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이유로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어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와 2016년부터 진행해 온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간 고속철도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국제입찰을 앞두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중국 국영기업이 딸 경우 중국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될 것이 불 보듯 뻔해 말레이시아에 해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쇼핑몰에 전시된 중국 고속철도. <사진제공=연합뉴스>
    ▲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쇼핑몰에 전시된 중국 고속철도. <사진제공=연합뉴스>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일본을 따돌리고 수도 자카르타에서 제3도시 반둥까지 142㎞ 구간을 잇는 고속철 사업을 수주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복잡한 토지수용 절차와 땅값 상승 등으로 공사가 사실상 중단되는 등 지지부진하 모습을 보여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들어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에 나섰고 고속철 속도를 시속 350~380㎞에서 시속 250㎞로 줄이고 정거장 수도 8곳에저 절반으로 축소하는 등 건설 계획을 대폭 수정했지만 내년 개통은 물건너 갔다. 인도네시아에선 고속철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어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재선에 도전하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치적으로 삼으려던 인프라 사업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일본을 따돌리고 수도 자카르타에서 제3도시 반둥까지 142㎞ 구간을 잇는 고속철 사업을 수주했다. 사진은 공사현장. <사진제공=연합뉴스>
    ▲ 중국은 지난 2016년 일본을 따돌리고 수도 자카르타에서 제3도시 반둥까지 142㎞ 구간을 잇는 고속철 사업을 수주했다. 사진은 공사현장. <사진제공=연합뉴스>


     민주주의 역사가 짧아 정부의 권한이 큰데다 제도나 정책이 중국과 비슷해 일대일로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국가들도 사업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스리랑카 남부에 조성된 함반토타항이 '대출금 상환'에 실패해 중국 국영기업에 항구 운영권을 넘겨 준 사건이 계기가 됐다. 임차형식이지만 기간이 99년에 달해 중국에 헌납한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내세워 동남아 요충지에 항만을 조성하면서 인근에 공업단지를 만들어 '미니 홍색 경제권'을 구축하고 있다. 스리랑카가 중국 좋은 일만 시켜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리랑카 사태를 지켜본 미얀마는 중국이 후원하는 100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의 차우퓨 심해항 건설 프로젝트를 축소할 방침이다. 중국으로부터 빌린 건설 비용을 갚지 못할 경우 항만 운영권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서다. 차우퓨 심해항 건설 비용의 40% 가랑은 중국이 미얀마에 빌려주는 돈이다. 소윈 미얀마 재무장관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나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투자는 건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스리랑카 남부에 조성된 함반토타항 전경. 스리랑카 정부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과 함께 조성했지만 건설비 등 대출금 상환에 실패해 운영권을 99년간 중국국영기업에 넘겼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스리랑카 남부에 조성된 함반토타항 전경. 스리랑카 정부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과 함께 조성했지만 건설비 등 대출금 상환에 실패해 운영권을 99년간 중국국영기업에 넘겼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개발센터는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대중(對中) 채무가 커지고 있다"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서 소득 수준이 낮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중국에서 빌려 쓴 돈의 규모가 자국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수준이어서 매우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당장 인프라가 급해 중국과 손잡고 고속철도 사업 등을 벌이고 있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제2의 스리랑카' 사례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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