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현장

  • 다시 고개든 反中정서
    깊어지는 베트남 정부의 고민

    경제특구 토지임대 최장 99년 추진에 "중국에 땅 뺏길라" 베트남서 반중시위
    베트남 정부 법안처리 4개월 연기…시위 참가자 강경 대응
    베트남 최대 교역국 중국…투자 유치와 반중 여론 사이에서 `진땀`

    기사입력 2018-06-24 18:33:45 | 최종수정 2018-07-04 17:29:00
     "중국에 단 하루라도 베트남 땅을 빌려줄 수 없다."

     지난 10일 베트남 호찌민의 한 공장 앞에서 1000여 명의 노동자는 '99년 토지 임대 반대' '중국은 물러가라' 등이 적힌 피켓과 펼침막을 들고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달 초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경제특구 내 토지 임대 기간을 최장 99년까지 늘리자 베트남 전국 곳곳에서 반중(反中)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2014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두고 발생했던 베트남 내 반중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25일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가 중국 투자 유치와 반중 여론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반중 시위의 발단은 이렇다. 베트남 정부는 이달 초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북부 꽝닌성의 번돈, 중부 카인호아성의 박번퐁, 남부 끼엔장성의 푸꾸옥 등 세 곳을 경제특구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관련 법안에서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토지를 임대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70년에서 99년까지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마련했다. 동남아시아에는 경제특구 내 토지 임대 기간을 최장 99년으로 설정한 곳이 많다.

     경제특구 법안에는 중국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이 법안이 공개되자 세계 부동산 시장의 큰손인 중국이 경제특구를 독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베트남 시민들은 중국 기업에 경제특구 내 토지를 99년 빌려주는 것은 곧 중국에 베트남 땅을 팔아 넘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9~10일 하노이와 남부 경제 중심지 호찌민 등 곳곳에서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민위원회 건물 울타리가 파괴되고 경비초소가 불타는 등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관을 포함해 부상자가 수십 명 나왔다.

     베트남 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경제특구 관련 법안의 국회 심의·의결을 10월로 연기하고 토지 임대 조항을 뺀 수정안을 다시 제출하기로 했다. 동시에 더 이상 시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거리에 경찰을 배치하는 등 강력하게 단속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 참가자를 100명 이상 체포했다.

     이로써 반중 시위는 주춤해졌지만 베트남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중국의 투자 유치가 절실하지만 반중 여론이 여전히 들끓고 있어서다.

     중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다. 중국과 베트남 간 교역량은 올해 1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역액 1000억달러는 한국이 베트남과 2020년까지 달성하려는 목표치이기도 하다.

     SCMP는 "중국 투자자들은 베트남 경제 발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며 "베트남 남부 빈투언 지역에서 17억6000억달러 규모 발전소와 68억달러 규모 제조업 공장은 중국 자본으로 건설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로버트 로스 미국 보스턴대 정치과학부 교수는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중국에서 얻을 것이 많다"며 "베트남 정부가 자국 내 반중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베트남은 이번에 촉발된 반중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라며 "그러지 않으면 중국과 협력하려는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 베트남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정부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반중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는 것이다. 베트남 내에는 경제개발에 따른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환경오염, 부의 양극화 등에 불만을 느끼는 시민이 적지 않다. 베트남이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정부의 정책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할 말은 하고 살자'며 이견을 적극 표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최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단속에 나섰지만 중국과 달리 베트남 시민 대다수는 페이스북 등의 사용이 자유로워 특정 의견이 퍼지는 속도도 빠르다. 따라서 앞으로 베트남에서 반중 시위와 같은 움직임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이번 시위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지만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욱 청운대 베트남학과 교수는 "베트남 내 시민들의 시위가 발생할 상황에 대비해 대응 매뉴얼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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