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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상대회 성공 이끈 송창근 印尼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

    조국이 부모라면 한상은 자식…한국청년 채용이 효도하는 것

    기사입력 2015-10-19 13:41:47 | 최종수정 2015-10-22 0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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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근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59)은 '인도네시아의 신발왕'으로 불린다. 전 세계 3위 신발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나이키, 컨버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화를 연 3000만켤레 생산하며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988년 단돈 300달러를 들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신발 사업을 시작한 송 회장은 이제 연매출 2억5000만달러의 기업을 일구는 성공 신화를 썼다. 한 명의 종업원으로 출발한 회사도 2만여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 됐다. 그는 2006년 인도네시아 자체 브랜드 이글(Eagle)도 인수해 현재 3000여 개 매장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1위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송 회장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수많은 신발 공장이 인도네시아를 떠났지만 KMK그룹만은 건재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데는 종업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송 회장의 '휴먼 경영'이 있었다. 송 회장은 '휴먼 경영'을 '종업원들이 회사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정의한다. 제14차 세계한상대회에서 대회장을 맡은 송 회장을 지난 15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만나 경영 성공 비결과 한상대회를 끝낸 소감을 들어봤다.

    ―제14차 세계한상대회를 마친 소감은.
    ▷열정과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회를 준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대해서는 스스로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겠다. 다만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참석자들이 조금 더 배우는 계기가 되고 자기계발,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특히 대회 기간 이곳을 방문한 많은 청년들이 새로운 자기 영역을 개발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상대회를 통해 한상들이 청년 일자리 제공에 앞장섰는데.
    ▷조국이 부모라면 한상은 자식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한상도 이제 부모인 조국에 효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청년실업 해소에 한상이 나선 것이다. 나도 이번 대회 기간 행사장을 찾은 한국 대학생 10여 명을 인턴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전 세계 700만 한상이 한국 청년 채용에 나선다면 대한민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청년희망펀드에 대한 한상의 관심도 뜨거웠다.
    ▷청년희망펀드를 통해 한상도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국민 전체가 여기에 모두 동참했으면 좋겠다. 국가에서 불을 지피면 해외동포들도 더욱 많이 참여할 것이다. 청년희망펀드의 참여를 다각화하기 위해 기부 형태를 다양화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기부금 이외에도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물건도 기증할 수 있는 형태가 됐으면 한다.

    ―해외에서 본 한국 청년들의 모습은.
    ▷조금 대담했으면 좋겠다. 실업난이 심각하다보니 청년들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바다도 건너겠다는 포부와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다만 청년들의 어학 실력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학 실력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시대에는 자신에 대한 표현을 잘 해야 된다. 기업들도 채용 시 의사 표현 능력을 중요시한다. 지금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똑똑한 인재도 어학 실력이 부족해 말을 못하고, 대화 능력이 부족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상의 리딩 CEO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가 한상에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다. 정부가 한상대회에 재정적 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그것보다 한상은 정부의 관심과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국이 부모라면 한상은 자식이라고 했는데 자식한테 필요한 건 부모의 돈이 아니라 사랑이지 않느냐.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중학교 때까지 전기가 없는 시골에서 살았다. 이후 대전으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 시절에는 학업보다 사회 경험을 쌓는 데 집중했다. 대학 다닐 때 결혼을 하면서 책임감과 함께 헝그리정신 같은 것을 가진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책 외판원도 했고 은행 경비, 영어 레슨 등을 하며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그 과정이 제 인생을 바꾼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단돈 300달러만 들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원서를 이곳저곳 넣어봤는데 다 떨어졌다. 그러던 중 부산의 한 신발회사에 우연히 취직하게 됐다. 하지만 3년 반을 다니고 회사가 부도나 실업자가 됐다. 그러면서 신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신발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1988년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신발 관련 사업에 합작투자를 했지만 실패했다. 아내가 보내준 비상금 300달러로 다시 신발 부자재 영업을 했다. 배고픔을 느꼈기 때문인지 머리가 빨리 돌고,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사업에서 빨리 자리 잡게 된 비결 같다. 1990년에 인도네시아 현지 신발 공장을 인수했다.

    ―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구상했나.
    ▷당시 한국의 신발제조업은 인건비가 많이 올라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외 사업지로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세 나라를 우선 고려했다. 그렇게 관련 국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한 후 인도네시아를 가장 적합한 곳으로 판단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성이 온순하고 한국처럼 똑같은 식민 지배를 경험했고 공통점이 많았다. 인적자원과 지하자원이 풍부한 점도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KMK그룹의 성공 비결은.
    ▷기업은 곧 사람이다. 나는 기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회사에 다니는 종업원들은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이다. CEO는 종업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회사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줘야 된다. 내가 배고프면 종업원도 배고프고, 내가 목이 마르면 종업원도 목이 마른 게 기업 경영의 이치다. CEO는 종업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종업원이 CEO를 좋아하게 되면 회사는 발전한다. 종업원들이 원하고 종업원들이 기뻐하는 일을 해주는 사람이 CEO다. 종업원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서로 격려해야 한다. CEO는 종업원의 역량을 발견해 코칭해주고 종업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도덕적 책임이 있다.

    송창근 회장이 지난 15일 한상대회 청년 채용 오디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송창근 회장이 지난 15일 한상대회 청년 채용 오디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CEO로서 어려운 점은 어떻게 극복하나.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혼자 고민했다. 예를 들어 '다음주에 봉급을 줘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디서 돈을 빌려 월급을 주지' 이런 고민을 혼자서만 수없이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혼자 고민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 내 문제에 대해서는 종업원들에게 항상 오픈하고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종업원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간다. 회사가 2000년대 초반 어려워졌을 때 전 직원을 모아놓고 회사 사정을 이야기하고 '1일 1달러 절약하기' 운동을 펼쳤더니 회사에 큰 도움이 된 경험이 있다. 1달러만 절약하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CEO의 호소가 종업원들에게 동정심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어려울 때 숨기려고 하지만 나는 마음을 열면 오히려 도움의 손길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지 사회공헌활동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년째 종업원들의 가정을 2주에 한 번 방문하고 있다. 종업원 가정을 방문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마을 주민들의 애환도 듣고 친목도 다진다. 가정 방문 행사는 외환위기 당시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종업원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직원 조사 차원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가정 방문 행사 이외에도 종업원 가족들에게 기부금 전달은 물론 마을 주민을 위한 학교와 종교시설 지원, 고아들의 학비 지원 등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의 인생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는 "수천 명의 국민을 저한테 주면 저 큰 산을 옮기겠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청년을 주면 저는 지구를 움직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그 나라의 희망이다. 앞으로 한국 청년을 많이 채용해 우리 청년들이 세계로 뻗어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10여 년 뒤에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 청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희망의 전도사가 되겠다.

    ■ 악몽의 1998년 印尼 폭동

    송창근 회장이 IMF 외환위기 당시 도산 위기의 기업을 살린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1998년 IMF 충격 여파로 인도네시아에서 폭동이 발생해 수많은 외국 회사가 떠나게 됐다. 당시 미국 나이키 운동화를 주문 제작하던 KMK그룹도 그 여파로 나이키 주문이 중단됐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린 것은 종업원에 대한 송 회장의 사랑이었다. 본사가 주문을 중단하자 송 회장은 오히려 종업원들에게 효도비를 지급했다. 종업원들의 애사심은 깊어졌고 종업원 가족들까지 송 회장을 응원했다. 또 송 회장은 전 종업원을 모아놓고 "난 여러분만 있으면 된다. 회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애원했다. 이렇게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송 회장은 미국 나이키 본사로 달려갔다.

    송 회장은 종업원들의 절박한 기도 모습과 눈물을 흘리는 종업원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지금 4000여 명의 우리 종업원들이 한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종업원들을 믿고 맡겨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송 회장의 진심 어린 부탁과 종업원들과의 단결된 모습은 결국 나이키 경영진의 마음을 움직였고, 주문도 다시 성사됐다. 이후 KMK그룹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 송창근 회장은…

    △1960년 대전 출생 △1979년 충남고 졸업 △1985년 울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1년 KMK그룹 설립 △2003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표창 △2008년 인도네시아 내 여성근로자가 취업하기 원하는 기업표창 △201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석류장) △2015년 동남아시아 한상연합회 부회장 △2015년 제14차 세계한상대회장

    [대구 = 우성덕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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